셔터 아일랜드 _ 그 섬에선 어떤 일이

<셔터 아일랜드>(2010)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크 러팔로, 벤 킹슬리, 막스 폰 시도우, 미쉘 윌리암스
원작 : 데니스 루헤인 <살인자들의 섬>



연방 수사관 테디 다니엘스는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환자 실종사건을 수사하러 자원해 가는 중이다.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은 사방이 깎아지른 바위 절벽인 섬에 있는데 남북전쟁 때는 연합군의 요새로 쓰였다고 한다. 배에서 처음 만난 파트너 척 아울은 수사관으로서 테디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는듯 하며, 그를 보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모양새 떨어지게도 테디는 배멀미 때문에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계속 구역질을 해댄다. '저건 물이야, 그냥 물일 뿐이야'를 계속 되뇌이는 걸 보면 테디의 배멀미는 육체적인 증상이라기 보다 물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한 듯 하다. 물 공포증이 있는 테디에게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섬은 감옥이나 다름없다. 테디는 비장한 각오로 섬에 내려선다. 

총을 들고 부두로 마중나온 교도관들은 테디와 척을 호기심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신 병원 담장 안에서 노예처럼 쇠사슬로 팔과 발이 묶여 정원을 단장하던 수감자들은 테디를 보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반가워한다. 그중 노파 한 명은 테디를 보고 눈을 빛내며 비밀스런 수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테디의 관심을 끄는 것은 죄질이 가장 나쁜 흉악범들을 독방에 가둬 놓는다는 C동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그야말로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곳으로 일반 병동과는 다른 으스스함이 건물 전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테디와 파트너 척은 애쉬클리프 정신병원의 원장인 코리 박사를 만난다. 그는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를 치료하고 교화도 함께하는 애쉬클리프의 시스템을 세운 사람이다. 테디는 코리 박사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말러의 음악과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가구와 장식물 들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연합군으로 다카우 수용소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테디는 나치 장교의 방에서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유대인들을 학대하며 생체실험을 하던 나치 장교는 연합군이 쳐들어 오자 호화롭고 우아한 자기 방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자살을 시도했었다. 사회로 복귀한 뒤에도 나치의 만행과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못하는 테디는 코리 박사와 동료 레닝 박사에게서 유대인을 생체실험하던 나치의 잔재를 본다. 특히 레닝 박사의 억양에 남아 있는 독일어의 흔적과, 그의 몸 전체에 흐르는 엄숙하고 교양있는 독일계 지식인의 분위기는 테디에게 깊은 혐오감을 불러온다. 

코리 박사에게서 실종된 환자 레이첼 솔란다에 대해 듣는 테디와 파트너 척. 테디는 특히 중년의 여자가 밀폐된 방에서 신발도 신지 않고 전기 철조망이 둘러쳐진 정신병원을 탈출했다는 정황을 믿을 수 없어한다. 더군다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레이첼의 주치의 시한 박사가 마침 휴가를 얻어 섬을 빠져나갔다는 얘길 듣자 폭발해 버린다.  테디는 코리 박사에게 화를 내고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기 어려우니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날 밤 테디는 꿈속에서 죽은 아내를 만난다. 아내를 그리워하고 그녀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한 데 죄책감을 느끼는 테디. 그는 환상 속에서 그녀를 껴안고 고통스럽게 눈물을 흘린다. 아내는 테디에게 앤드류 레이디스가 이곳에 있다고 알려 준다. 그녀를 죽이고 아파트에 불을 지른 흉악범 앤드류 레이디스, 사실 테디는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기 위해 애쉬클리프로 자원해 들어온 것이었다. 반드시 그를 붙잡아 죽은 아내의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그는 당분간 섬을 떠나지 않고 수사를 계속 하기로 결심하는데....



테디 다니엘스와 척 아울의 첫 만남. 배멀미로 제정신이 아닌 보스를 안스럽게 보는 척 



미궁에 빠진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두통과 죄책감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환상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그가 수사하는 범죄사건과 내면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사건도 해결하고 내면의 문제도 해결하는...딱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 구조이다. 반전은 사실 조금 영화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그건가? 하고 짐작할 만한 것이다. 반전에만 몰두하고 영화를 보면 놓치는게 많을 것이다. 특히 테디 다니엘스를 중심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릿하게 넘나드는 아름다운 장면들과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그의 내면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의 환상과 계속 대화하고 그녀가 던져준 단서에 집착하고, 거슬리는 사람을 교묘하게 괴롭혀 대답을 얻어내는 그를 보면서, 뭔가 사실적인 수사물은 아니구나 싶었다. 테디의 정신 세계는 망상에 걸린 편집증 환자와 비슷하다. 수사에 깊이 빠져들수록 그는 파트너 척의 말도 안듣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코리 박사를 의심하며, 동굴에 숨은 은둔자의 얘기만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비바람이 쏟아지는 검은 숲 속, 무덤 옆 폐가, 쇠창살이 쳐진 어두운 감옥과 미로, 나선 계단,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와 고소공포증이 일어나는 가파르게 높은 절벽, 바위 틈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검은 쥐떼, 비밀의 열쇠를 쥐고 동굴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이 모든 것들도 다 현실보다는 꿈, 악몽에 더 어울리는 장치들이다. 

반전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장면이 테디 다니엘스가 환상의 필터를 통해 본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말러 음악이 흘러나오던 코리 박사의 관사가 너무 웅장하고 화려해서 마치 유럽 귀족의 성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무리 섬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코리 박사이고, 미국 정보부에 정보 자문까지 하는 그이지만 섬에 그 정도로 화려한 공간을 꾸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더구나 1954년은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되 물자가 여전히 귀했을 때 아닌가. 

테디 다니엘스에게 가장 중요한 욕망은 선한 자가 되고 싶다는, 정의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 욕망은 아주 강하다. 아내를 죽음에서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보다도 더 강하다. '폭력은 신의 선물'이라고 믿는 교도소장의 말대로 테디는 폭력적인 성향을 타고 났고 그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도소장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폭력성향을 분출하며 만족하는 반면에 테디는 죄의식과 분열에 시달린다. 그에게는 합법적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보다 도덕적으로 명분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의롭게 살고 싶은 테디의 의지와 손에 피를 묻히도록 강요하는 현실의 간극은 그를 조금씩 분열시키더니 결국 현실과 연결된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디를 다시 현실과 맞닥뜨리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정의롭고자 하는 욕망이다. 아내의 환상이 시키는 대로 파트너를 버리고 도망갔더라면 테디는 망상의 세계에서 계속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척이 비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정의롭고자 하는 테디의 욕망이 단순한 자기기만이 아니라 얼마나 절실하고 확고한 것인지가 여기서 드러난다. 정의롭고 싶은 욕망이 환상을 만들고, 그 욕망이 환상을 깨고 현실을 각성하게 했다가 다시 환상으로.....이 악순환은 테디가 욕망을 버리지 않는 이상 멈출 수가 없다. 테디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그 방법만이 그를 악순환의 고리에서 빼내고, 죄의식과 폭력과 정의에 짓눌려 분열하는 그의 내면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긴장감과 슬픔을 고조시키는 음악, 테디의 아내(미쉘 윌리암스)가 등장하는 환상장면이 특히 좋았다. 섬 안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장면이 흐릿하고 어두운데, 테디가 아내와 살던 아파트는 햇살이 눈부실 정도로 가득 찬 데다가 벽지까지 밝아서 안타까움이 더 강해졌다. 아내의 부드러운 금발과 빨간 꽃무늬가 크게 들어간 노란색 원피스도 정말 예뻤다. 테디가 아내를 등 뒤에서 껴안고 눈물 범벅인 얼굴을 부비며 죄책감과 회한으로 괴로워할 때 그녀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흐르고 천정에서 검은 재가 눈처럼 쏟아져 내리며 그들을 감싸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장르 영화와 환상장면도 이렇게 잘 찍는 감독이었던가?  하긴 간단한 동작을 느리게 틀고 어울리지 않는 클래식 음악을 곁들여서 기묘하게 환상적인 장면, <분노의 주먹>의 그 유명한 오프닝을 만든 것도 스콜세지였다. <셔터 아일랜드>가 스콜세지의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작품이라고 할 순 없지만, 힘빠진 거장의 영화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묘하게 매력적인 영화다. 그의 다음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된다. 


p.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뿐만 아니라 조연들도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는 앙상블이 정말 좋았던 영화다. 원작 내용을 전혀 모르고 영화 소개로만 접할때는 마크 러팔로와 디카프리오가 파트너로 함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줄 알았는데 후반부로 가면 디카프리오 원맨쇼고 마크 러팔로는 너무 조금 나온다. <조디악>의 그 형사를 이렇게 얌전하게 써먹다니. ㅠㅠ  



빠방한 조연진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마크 러팔로(척 아울), 
벤 킹슬리(코리 박사), 막스 폰 시도우(레닝 박사), 미쉘 윌리암스(테디의 아내)



by 이피게니 | 2010/04/23 01:42 | 감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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