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010 )

감독 : 이준익
출연 : 황정민(황정학), 차승원(이몽학), 백성현(견자), 한지혜(백지)

티저 포스터였던 같은데, 본 포스터보다 이게 훨씬 느낌이 좋다.


어두운 밤, 두 패로 나뉜 양반의 무리가 한 선비를 둘러싸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위협을 하고 있다. 위협을 받는 사람은 율곡 이이의 제자이자 대동계의 수장인 정여립이고 그를 윽박지르는 사람들은 반대 당파인 서인들이다. 정여립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대동계를 조직해 왜구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구한 터였다. 나라가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으니 칭찬을 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어찌된 일인지 대신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정여립을 보고 눈을 부라리기만 한다. 그들은 정여립이 역모를 꾀한다고 비난한다. 서인들은 당파가 다르니 그렇다 쳐도 같은 파인 동인들까지 한뜻이다. 동인들은 정여립의 인품이나 사상이 어떠하니 역모할 마음으로 조직을 꾸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귀찮은 분란에 걸려들고 싶지 않고 의심많은 왕의 눈밖에 나고 싶지 않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대동계원들은 무작정 조직을 해체하면 또 왜구가 쳐들어 왔을 때 어떻게 하냐고 분노한다. 필요할 때는 대동계의 힘을 이용하다가 위험이 사라지자 없애버리려고 하는 권력자들의 약삭빠름도 참을 수 없다. 위엄도 없고 무능하기까지 한 왕과 당파 싸움에 휘말린 대신들을 싹 쓸어버리고 새 세상을 만들자고 정여립에게 호소해보지만 정여립은 고개를 젓는다. 그는 권력 따위에 혹해 본 적 없는 강직한 선비일 뿐이다. 어명이라면 대동계를 해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여립이 의문의 자결을 하고, 선조는 죄인에게 자결도 과분하다며 시체를 끌어와 참수형을 시킨다. 이몽학은 정여립의 복수도 하고 함께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자며 대동계원들을 선동한다. 이몽학이 계원들을 이끌고 복수란 이름아래 살육을 벌이고 있을 때 맹인 검객 황정학은 홀로 정여립의 시신을 수습한다. 그는 이몽학이 정여립을 죽였으며 야심을 품고 그의 죽음을 이용하려한다고 의심한다. 황정학은 이몽학의 칼에 아버지를 잃은 견자를 거둬 검술을 가르치며 함께 이몽학의 뒤를 쫓는다. 


이몽학을 치려고 견자를 살린 황정학, 역시 이몽학을 죽이려고 황정학의 눈이 되는 견자. 둘만 나오면 장르는 코미디로. 


영화는 한편으로 보면 황정학과 견자가 서로 투닥거리며 싸우면서 정드는 버디 무비이기도 하고, 목표없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젊은이가 성장하고 각성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부패한 세상 무능한 지배층에 맞서 세상을 바꿔 보려는 혁명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요소들을 한군데 담아 넣고서도 어디 한 군데 뭉치거나 막힘없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이준익 감독의 스토리 텔링은 대단하다. 그런데 어느쪽이던 한쪽으로 분명해졌다면 관객이 훨씬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감독의 메시지도 잘 받아들였을 것 같다. 산만하게 늘어놓은 여러 가지 이야기로 클라이막스를 넘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 않고 영화속 인물들과 현실 비판이 뒤엉켜 답답하기만 했다.

영화가 다루는 시간은 조선 중기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굳이 사극의 어투를 쓰지 않고 인물들이 현대어를 쓰게 한 것도 영화속 세상과 현실의 유사함을 강조하려 한 것 같다. 온몸으로 짜증을 표현하는 왕과 텔레토비들처럼 보라와 파랑으로 색깔을 맞춰 입고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는 대신들은 국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국회에서 싸움박질이나 벌이는 정치인들을 생각나게 한다. 꿈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불만에 가득찬 견자는 지금의 20대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그렇다면 이몽학은 누구를 반영하는가? 386세대? 

이몽학에게는 꿈이 있다. 그 꿈 때문에 이몽학은 친구를 죽이고서도 한 가문을 몰살시키고서도 떳떳하다. 꿈에 방해가 되면 동지와 부하도 거침없이 베어 버린다.  

영화 안에서 특히 공감이 안되었던 부분은 이몽학과 그의 꿈에 대한 태도였다. 기생 백지는 아버지를 죽인 이몽학에게 복수하겠다는 청년 견자에게 '아무리 해도 넌 이몽학에게 안돼. 넌 꿈이 없잖아.' 라고 말한다. 백지를 연모하기에 이몽학을 원수로 증오하면서 남자로서 경쟁하는 마음도 있던 견자는 그 말에 기운이 팍 꺾인다. 자기에게는 없지만 이몽학에겐 있는 꿈이 대단하다고, 그런 꿈을 가진 이몽학은 백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몽학의 꿈이 그렇게 대단한가? 모두의 동의를 받아낼 만큼 그렇게 아름답고 꼭 이뤄내야 하는 것인가? 

처음 이몽학이 칼을 들고 서인의 대신이 타고 가던 가마를 막아 섰을 때 한 말은 그럴듯했다.
 "정여립은 역적이야." 라고 대신이 말하자 이몽학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내 눈에는 정여립 모함하고 나라 말아먹는 니들이 역적이야!"  

그런데 이몽학이 자신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계원들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서 뭔가 아니다 싶었다. 이몽학에게 가장 정이 떨어진 것은 대동계를 믿고 수원성에 모인 백성들을 놔두고 궁으로 향하면 왜구에게 죽을 것이니 그럴 수 없다는 부하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칼로 찔러버렸을 때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살인 기계가 아니고서야, 증오로 똘똘 뭉친 괴물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이몽학 같은 혁명가는 인간을 경멸하는 혁명가다. 그의 마음 속에는 속좁고 무능하고 의심많은 선조와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하고 싸우기나 하는 조정 대신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부글거린다.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위에서 호령하는 그들을 단번에 쓸어버리고 싶다. 위에 올라서서 한심하고 쪼잔하게 잇속이나 챙기고, 대의를 논하기보다는 유치하게 편 갈라 싸움이나 벌이는 인간들에 대한 혐오 때문에 그는 혁명을 한다. 그 밑에 깔려 허덕이고 굶주리는 백성들에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정여립이나 황정학 만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부도덕한 지배층에 대한 혐오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몽학의 목표에 그 지배층을 쓸어버리는 것 외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데 아무런 구체적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옆에 있는 벗과 동료들을 그렇게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평범한 백성들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몽학은 자신 옆에 살아 숨쉬는 인간들보다 이념과 목적이 더 우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몽학의 꿈이 자신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는 몰라도 논리가 있는 영화라면 이런 인물이 꾸는 꿈이 긍정적으로 그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영화 안에서 이몽학과 그의 꿈을 대하는 태도는 애매하기만 하다. 황정학이 이몽학과 대립하며 그의 꿈이 얼마나 속이 텅 빈 허무인지를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몽학아 그러면 안돼'만 연발하며 넘어간다. 젊은 견자가 마지막 대결에서 이몽학의 오만을 부수고 새롭게 각성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오히려 이몽학의 아량으로 목숨을 구한다. 

더군다나 견자의 마지막 절규, 칼을 들고 왜구와 맞서면서 내지른 외침이 결국 백지의 사랑을 이몽학에게 뺏긴 아픔 때문이고 자폭이란 생각이 드니 이렇게 끝을도 되는 건가 싶었다. 황정학은 견자와는 몸개그, 방짜쟁이와는 만담만 하다가 스리슬쩍 사라져 버렸고, 이몽학은 훨씬 더 악한이 되어 클라이막스에서 통쾌하게 무너져야 했는데 간지를 잃지 않고 퇴장했고, 견자는....견자는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 다음에는 백지에 대한 연모로 움직이다가 각성도 못하고 자폭해버렸다. 

감독이 주인공을 구축하고 이야기의 줄기를 잡는데 열중하지 못한 건 이 영화 속의 제일 큰 악당에 대한 분노와 짜증 때문이 아닐지. 사실 왕과 텔레토비 대신들이 끼친 해악에 비하면 이몽학의 악마성은 귀여운 수준. 이들은 일 터지면 나몰라라 도망갔다가 급한 불 꺼지고 수습되면 다시 돌아와 떵떵거리며 하던 짓 계속 하지 않았는가? 끈질기고 집요하고 생명력 있게. 이 절대악을 신랄하게 풍자하는데 열중하느라, 현실에서 이들에 대입할 수 있는 세력을 연동시켜 비판하느라 정작 주인공들의 당위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지. 

아무튼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는데 현실에서 여전히 진행중인,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게 분명한 문제들을  정점에 올려 놓고 영화가 끝나버린 것 같아 허무했다. 중간중간 유머도 있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시원시원한 화면과 물 흐르는듯한 연결도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p.s) 1. 황정민의 맹인 검객 연기가 없었으면 영화를 본 즐거움의 반은 날아가 버렸을 거다. 백성현은 연기도 목소리도 다 좋은데 뭔가 아직은...이라는 느낌. 오히려 다모에서 황보윤(이서진)의 아역으로 나왔을 때, 말아톤에서 자폐아 형에 집착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엄마에게 불만 가득한 고등학생으로 나왔을 때가 더 멋있었다. 아무래도 견자의 캐릭터가 그의 매력을 다 보여주기에는 밋밋해서인 듯하다. 

2. 영화에서 왕과 지배층은 그야말로 무능과 부패의 상징이고, 혁명가는 이념의 세상을 세우는데 백성을 이용하는 괴물로 권력자들이랑 다를게 없으며, 젊은이는 꿈도 절제도 없이 욕구대로 무작정 달려드는 무모함만 있다. 갑옷과 조총등 신무기로 무장한 외적이 달려드는데 모두 도망간 궁궐에서 백성들이 짚으로 만든 방패만 들고 선 장면은 정말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영화속과 비교해 그닥 나을게 없다는 게 문제. 

3.백지가 이몽학을 찾아 견자와 함께 다니며 전쟁터가 된 궁궐을 누비는 것을 보며, <님은 먼 곳에>에서 수애가 어떻게 움직였을지가 대충 그려졌다. 백지는 그나마 여기서 제 4 주인공쯤 되니 주변 인물이나 상황과 겉돌아도 그러려니 하는데, 수애는 그 영화에서 제1주인공 아니었던가? 흠...

4. 영화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을 바탕으로 고증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흥용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주인공의 성격이나 이야기 줄거리를 많이 바꿔서 거의 다른 작품이라 봐도 된다고. 



by 이피게니 | 2010/05/25 23:58 | 감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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